Johann Sebastian Bach — die Motetten, BWV 225–230

모테트의 작곡양식, 연주관습, 그리고 살아남은 전통

Singet dem Herrn ein neues Lied BWV 225 Der Geist hilft unser Schwachheit auf BWV 226 Jesu, meine Freude BWV 227 Fürchte dich nicht BWV 228 Komm, Jesu, komm BWV 229 Lobet den Herrn, alle Heiden BWV 230

1789년 베를린으로 여행하던 도중 라이프치히에 들른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토마스 교회 칸토르 요한 프리드리히 돌레스(Johann Friedrich Doles)가 지휘하는 토마스 교회 합창단의 리허설에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된다. 토마스 교회 합창단 출신으로 나중에 라이프치히 신문 Allgemeine Musikalischen Zeitung의 편집자가 된 프리드리히 로흘리츠(Friedrich Rochlitz)는 1798년 11월 연재기사 Anekdoten aus Mozarts Leben에서 이 장면을 회고하고 있다.

토마스 교회 합창단은 리허설에서 대(大) 바흐의 모테트 Singet dem Herrn ein neues Lied BWV 225을 불렀는데 몇 마디 지나지 않아 모차르트는 여태껏 알지 못했던 2중 합창곡의 존재에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작품입니까?” 작품이 끝나자 그는 기쁨에 넘쳐 “이제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작품을 발견했다!”라고 소리치고 칸토르에게 작품과 작곡자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고 말했다. 모차르트는 한 벌의 파트보를 양손에 들고 무릎과 주위에 죽 둘러놓고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샅샅이 살펴보고 감탄하며 돌레스에게 작품의 사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모차르트는 빈의 판 슈비텐(Gottfried van Swieten) 서클을 통해 바흐의 존재와 바흐의 건반작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바흐의 성악 작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모차르트는 바흐의 모테트를 처음 듣고 즉각적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경외감을 갖게 된 것이다. 로흘리츠는 모차르트 레퀴엠의 푸가를 들으면 모차르트가 바흐로부터 배워 온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바흐 성악작품의 권위자 피터 울니(Peter Wollny)는 바흐의 모테트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바흐 작품 가운데 특별히 개성적인 작품”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실제로 바흐의 모테트를 기존 모테트 장르에 편입시킬 수 있다면 아마도 음악사상 가장 복잡하고 뛰어난 모테트일 것이다.

바흐의 모테트는 바흐의 여러 성악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연주 전통이 끊어지지 않은 작품이다. 수난곡과 칸타타에 대해서는 아주 제한적인 정보만을 알고 있었던 포르켈(Johann Niklaus Forkel)조차 현존 모테트는 거의 대부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바흐 사후에 모테트는 바흐 부활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테트의 여러 가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바흐의 주요 성악 작품인 칸타타, 수난곡, 미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바흐의 모테트는 음악적으로 뛰어나며 아마추어 합창단은 물론 프로 성악가들이 연주할 만한 가치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연주 실제에 대한 가이드가 부족했다. 바로 이 글의 목적은 모테트의 작곡방식, 연주관습, 연주사 등 광범위한 분야를 가로지르는 시야를 보여주며 감상자는 물론 연주자에게도 도움이 되려는 것이다.

1. 바흐의 모테트

바흐의 모테트를 다루면서 모테트의 정의에 대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고가 불필요해 보일 정도로 바흐의 독일어 모테트와 전형적인 르네상스 다성 모테트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실제로 후고 라이히텐트리트(Hugo Leichtentritt)는 바흐의 모테트에 대해 모테트라는 이름이 적절하지 않고 오히려 합창을 위한 칸타타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크 시대에 모테트라는 장르는 일반적으로 성경이나 종교시에서 따온 라틴 텍스트로 된 작품을 가리킨다. 그런데 미하엘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는 신타그마 무지쿰(Syntagma Musicum)에서 모테트를 그저 간단히 4성부에서 8성부로 구성된 라틴어 작품이라고 했다. 이처럼 용어가 모호한 만큼이나 고정된 형식도 규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르네상스와 달리 바로크 시대의 모테트라는 용어는 특정 장르를 지칭하기 보다는 전반적인 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7세기부터 독일어권의 모테트는 루터파 코랄에 기초한 간단하고 호모포닉한 작품에서 코랄 선율을 정선율(cantus firmus)로 하여 성경 구절을 가사로 사용한 대위법 작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바흐의 선조들이 활동한 튀링겐과 작센 지방의 모테트 전통은 성경 말씀을 전하는 멜로디 중심의 호모포닉한 부분과 코랄에 기초한 복잡한 다성부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모테트는 오랫동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에서 중요한 종교 음악으로 간주되었으나 바흐 시대에 이미 루터파 예배 음악의 중심은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을 받은 칸타타로 넘어가고 있었다. 모테트는 예배에서 오르간 전주 후 분위기를 정리하는 입당송의 역할 밖에 하지 않았다. 따라서 칸타타에 비해 음악적 중요도가 낮았고 바흐가 새로운 작품을 작곡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 실제로 바흐는 예배에 필요한 모테트를 에르하르트 보덴샤츠(Erhard Bodenschatz)가 편집한 이탈리아와 독일의 모테트를 모은 라이프치히의 옛 모테트 집 Florilegium portense(1603–1621)에서 골라 연주했다.

반면 정식 예배 밖에서는 새로운 모테트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고 있었다. 중상류 계층의 장례식을 위한 작품으로 너무 거창한 칸타타 대신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춘 음악으로 모테트가 적당하다고 여겨진 것이다. 바흐는 매장식, 추도식, 생일과 같은 특별한 행사를 위해 모테트를 작곡했으며 바흐는 그가 손댄 다른 장르처럼 한결같이 전통적인 양식에 개성적인 작곡 스타일을 접목시켰다. 바흐가 이처럼 행사용 모테트를 공들여 작곡한 데에는 부분적으로 경제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이프치히의 높은 물가와 날로 늘어가는 아이들을 부양하는 비용에 고통 받았던 바흐에게 부유한 시민들의 장례식을 위한 음악은 아주 짭짤한 부수입이었던 것이다.

바흐의 모테트는 독일 모테트 장르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바흐의 다른 걸작과 마찬가지로 모테트 장르의 정점에 서 있다. 바흐의 남아있는 모테트 작품은 모두 라이프치히 시대의 산물이지만 바흐는 모테트 스타일을 평생토록 애용했다.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도 바흐처럼 행사용 코랄 모테트를 여럿 작곡했지만 텔레만은 경력의 초기인 아이제나흐와 프랑크푸르트 시대에 모테트 작곡이 집중된 반면 바흐는 만년을 모두 보낸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일생동안 모테트 스타일을 연마한 것에 차이가 있다. 모테트라는 장르 자체는 이미 낡은 것이 되었지만 바흐는 모테트 스타일을 끊임없이 칸타타, 수난곡, 미사 구조에 편입시켜 장르의 한계를 넘어 모테트에 영속성을 부여했다.

칸타타에 비해 모테트의 지위가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모테트는 계속해서 연주되었고 심지어 바흐의 칸타타가 더 이상 불리지 않게 된 다음에도 모테트는 토마스 교회에서 울려 퍼졌다. 바흐 시대의 음악 비평가 샤이베(Johann Adolph Scheibe)는 Critischer Musicus에서 모테트를 이성적이고 적극적인 청중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바흐가 죽은 다음인 1753년 크라우제(Christian Gottfried Krause)는 종교 모테트는 마음으로부터 모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고 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789년 모차르트는 칸토르 돌레스가 지휘하는 바흐의 모테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794년부터 프리드리히 첼터(Friedrich Zelter)가 이끄는 베를린 징 아카데미는 바흐의 모테트를 표준 레퍼토리로 삼아 연주하기 시작했다. 1827년 첼터는 괴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흐의 모테트를 듣는다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 수백번이나 들었지만 결코 지치지 않는다라고 썼다.

수난곡, b단조 미사, 칸타타와 같은 바흐의 다른 성악작품과 달리 모테트는 바흐의 죽음 이후에도 잊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멘델스존이 1829년에 마태 수난곡을 다시 연주 한 것과 같은 재발견이 모테트에는 필요하지 않았다. 성 토마스 교회의 합창단은 모테트를 정기적으로 불렀으며 라이프치히의 연주 전통이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테트는 칸타타의 경우처럼 많은 수가 상실되지 않고 남았으며, 그래서 아마도 바흐가 작곡한 거의 모든 모테트가 우리에게 전해졌다.

2. 개별 작품

포르켈은 첫 번째 바흐 전기 Ü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1802)에서 바흐의 모테트를 8에서 10곡으로 헤아렸다. 그리고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와 제자 아그리콜라(Johann Friedrich Agricola)가 쓴 바흐 추도 기사(1754)에서도 복합창 모테트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현존하는 바흐 작품 목록에서 모테트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은 BWV 225–231과 부속 목록인 BWV Anh. 155–161 그리고 BWV 118을 비롯하여 칸타타로 잘못 분류된 모테트 악장들이 있다. 신바흐 전집의 편집자인 콘라트 아멜른(Konrad Ameln)은 여기서 BWV 225–230과 BWV 118만 진짜 모테트로 인정하고 부속 목록에 포함된 젊은 바흐가 가필하거나 편곡한 바흐 일족의 작품 같은 초기 모테트는 진작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반면 크리스토프 볼프(Christoph Wolff)와 한스-요아힘 슐체(Hans-Joachim Schulze)는 8곡의 모테트와 부속 목록에 포함된 2개의 편곡을 인정했다.

초기 편곡 작품을 바흐의 작품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태껏 음악학자들 사이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포르켈 시대 이후 바흐 모테트의 정확한 수에 대한 끝없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것을 다루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작품과 연주실제에 대해서는 신바흐 전집에서 인정하는 BWV 225–230까지만을 다루며 그 이상은 필요한 경우에만 언급하도록 했다.

포르켈은 모테트를 토마스 교회 합창단의 연습용 작품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모차르트 시대에 모테트는 이미 바흐 당시의 의미는 사라지고 합창 연습용 혹은 합창단의 솜씨를 뽐내는 쇼 피스로 간주되었다. 필립 슈피타(Philipp Spitta)는 특별한 경우에 예배에서 칸타타를 대체하기 위한 작품으로 추정했다. 모테트가 특정한 행사를 위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간신히 밝혀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이다.

바흐는 장례식이나 매장 후의 추도식을 위해 모테트를 작곡했다. 라이프치히의 잘로몬 다일링(Salomon Deyling)이 묘사한 상류층의 장례 예식(Gedächtnisgottesdienst)에서 필요한 작품이 바로 바흐의 모테트인 것이다. 최소한 세 곡(BWV 226, 227, 228)은 장례식과 직접 연관되어 있고 두 곡(BWV 229, 230)은 잠정적으로 장례식을 위한 모테트이다. 더 즐거운 행사를 위한 화려하고 기쁨에 넘치는 모테트 BWV 225 만큼은 죽음을 저 멀리에 두고 있다.

비록 대부분의 작품이 장례식 모테트(Sterbemotetten)지만 그것의 진짜 주제는 고통, 죽음, 무덤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의 믿음이며 주의 영혼 안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확신이다. “죽음은 승리 속에서 잊혀진다”는 성 바울의 말은 모테트의 좌우명으로 사용되었다.

Singet dem Herrn ein neues Lied — BWV 225

BWV 225는 1726년 혹은 1727년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초가 되는 코랄은 요한 그라만(Johann Gramann)의 “이제 찬양하라 나의 영혼”(1530)이다. 작곡 목적은 불분명 하지만 분위기로 보아 축전용 작품임은 분명하다. 슈피타는 신년 예배용 모테트로 생각했지만 아멜른은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Friedrich August I)의 생일 축하용 작품이라고 추정했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는 1727년 5월 라이프치히를 방문했는데 마침 5월 12일이 선제후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토마스 교회에서 생일 기념 예배가 열렸다. 작센 선제후는 폴란드 왕위를 쟁취하기 위해 이미 가톨릭으로 개종했기 때문에 칸타타를 연주하는 대신 나중에 b단조 미사의 일부가 되는 상투스와 모테트 BWV 225를 연주했다는 것이다.

Der Geist hilft unser Schwachheit auf — BWV 226

BWV 226는 작곡 목적과 연주 날짜가 분명하게 알려진 유일한 모테트이다. 기초가 되는 코랄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오소서 성령이여 주 하느님이시여”이다. BWV 226은 1729년 10월 라이프치히 대학의 부속 교회인 성 바울 교회(Paulinerkirche)에서 토마스 학교의 교장(Rector) 에르네스티(Johann Heinrich Ernesti)의 장례식을 위해 연주되었다. 대학 교수나 학자의 장례식은 Funus academicus라고 하여 중요하게 여겨졌고 작품의 충실한 규모가 이를 증명한다.

Jesu, meine Freude — BWV 227

BWV 227은 1735년 이전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초가 되는 코랄은 요한 프랑크(Johann Franck)의 “예수는 나의 기쁨”(1650)이다. 확증되지는 않았지만 몇몇 학자들은 BWV 227이 1723년 7월, 시 우체국장 케스(Kees)의 아내의 추도식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믿고 있다.

Fürchte dich nicht — BWV 228

BWV 228의 기초가 되는 코랄은 파울 게르하르트(Paul Gerhardt)의 “나 무엇을 위해 슬퍼하리”(1653)이다. BWV 227과 마찬가지로 확증된 것은 아니지만 BWV 228은 1726년 2월, 시 참사의원 빈클러(Winkler)의 아내의 장례식을 위해 작곡된 것으로 생각된다.

Komm, Jesu, komm — BWV 229

BWV 229은 1731년 혹은 1732년 이전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테트의 가사는 성경이나 코랄 대신 파울 티미히(Paul Thymich)가 요한 복음의 14장 6절을 패러프레이즈하여 쓴 종교시의 첫번째와 마지막 구절로 되어있다. 바흐의 라이프치히 전임자 요한 셸레(Johann Schelle)가 이미 곡을 붙였을 정도로 유명한 시인데 어쩌면 바흐가 1730년 5월에 죽은 셸레 미망인을 추도하기 위해 쓴 작품일지도 모른다.

Lobet den Herrn, alle Heiden — BWV 230

BWV 230은 마르틴 루터의 코랄 “주를 찬양하라”에 기초하고 있다. BWV 230은 출처와 작곡 연도가 불분명한데다가 독립된 바소 콘티누오까지 붙어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위작 취급을 받았다. 바흐의 진짜 작품인지 논란이 계속되어 다른 모테트에 비해 출판이 늦어졌다. 1821년의 인쇄판은 자필보에 의거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자필보는 사라지고 없다. 이 합창 작품은 본래 그것이 가지고 있는 비 모테트적인 작곡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바흐 칸타타의 한 부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바흐 모테트에 포함시키지 않는 Sei Lob und Preis mit Ehren BWV 231은 바흐의 칸타타 28번 2악장의 가사와 오케스트레이션을 개작한 것으로 텔레만과 하러(Johann Gottlieb Harrer)의 작품을 모은 파스티쵸 모테트의 일부이다.

원전과 출판

모테트의 악보가 모두 바흐의 손에서 전해진 것은 아니다. 바흐의 원전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몇몇 작품은 오랫동안 위작이냐 진작이냐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다. BWV 225, 226의 자필총보와 오리지널 파트보는 현재 베를린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BWV 227의 18세기 사본은 라이프치히 시립 도서관과 베를린 국립 도서관에, BWV 228, 229, 230의 18세기 사본은 베를린 국립 도서관과 브뤼셀 왕립 도서관에 있다. 대부분의 바흐 모테트는 포르켈이 언급한 것처럼 바흐 제자 키른베르거(Johann Philipp Kirnberger)가 만든 사본으로 키른베르거가 활동한 프로이센 아말리아(Amalia) 왕녀 궁정의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모테트의 현대 악보는 바흐의 다른 성악 작품보다 월등히 이른 시기에 출판되었다. BWV 225–228은 1802–3년에 토마스 칸토르 쉬히트(Johann Gottfried Schicht)의 편집으로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에서 출판되었다. 위작 논쟁이 있었던 BWV 230은 조금 늦어 1821년에 출판되었다. 1892년에는 바흐 협회 전집의 일부로 프란츠 뷜너(Franz Wüllner)의 편집 악보가 출판되었고 두 세대가 지나서 콘라트 아멜른에 의해 새로운 바흐 전집 악보가 완성되었다(베렌라이터, 1965).

3. 작곡양식

바흐 모테트 작품에서 양식상의 기본은 복합창 기술, 정교하게 만든 코랄, 그리고 엄격한 푸가 형식이다. 하슬러(Hans Leo Hassler)나 쉬츠(Heinrich Schütz) 같은 바흐의 선배들은 베네치아에서 둘, 셋 심지어 네 개의 합창단을 혼합하고 대비시키는 기술을 배워왔다. 그리고 바흐는 모테트를 작곡할 때 이러한 음악적 유산을 활용했다.

독일 코랄 모테트는 간결한 호모포닉한 코랄 부분으로 시작하는데 루터파 전통에서 설교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이어지는 복잡한 폴리포니 부분은 코랄을 정선율로 하여 멜로디를 확장해 나간다. 바흐의 모테트에서는 호모포니와 폴리포니가 균형 잡혀 있다. 바흐 모테트의 서로 다른 구조는 전통적인 루터파 코랄 모테트의 표준화되지 않은 특성을 이어받은 것이다. 모테트의 텍스트는 성서의 시편, 이사야서와 로마서, 혹은 그것에 기초한 루터파 코랄에서 따 온 것이며 텍스트의 선택과 배열에서 바흐의 개성이 드러난다.

BWV 225, BWV 226, BWV 228, BWV 229는 모두 두 개의 4성부 합창단, 즉 모두 8성부를 위해 작곡되었다. 복합창에서 독립된 성부들의 혼합이 빚어내는 음향의 풍부함은 음악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성악 성부의 기술적인 분리와 융합, 즉 Variatio per choros는 바흐 모테트 양식의 기본 원리이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정교한 코랄 작곡기술도 결합했다. 다른 성부들이 기교적인 푸가풍의 악장으로 짜여질 때 코랄은 정선율을 연주한다. 이것은 소위 ‘파헬벨 코랄 푸가’라고 부르는데 예를 들어 BWV 228의 마지막 부분이 그렇다.

BWV 227 — 대칭의 정점

바흐의 정교한 코랄 작법의 기술은 BWV 227에서 가장 완벽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작품은 복합창 없이 3성에서 5성까지, 다른 모테트보다 더 적은 수의 성부를 위해 작곡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모테트 가운데 가장 길며 형식적으로 뛰어난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BWV 227는 총 11개 섹션으로 나눌 수 있다.

섹션구성텍스트
1코랄Jesu, meine Freude
2다성 모테트로마서 8:1
3코랄
4다성 모테트로마서 8:2
5코랄
6푸가로마서 8:9
7코랄
8다성 모테트로마서 8:10
9코랄
10다성 모테트로마서 8:11
11코랄

전 곡은 여섯 번째 푸가를 중심으로 대칭구조이며 1–5섹션까지는 190마디, 7–11섹션까지는 189마디이다. 게다가 1–11섹션과 2–10섹션에 동일한 곡을 쌍으로 사용함으로서 곡에 통일성을 주고 있다.

코랄 “Jesu, meine Freude”의 여섯 구절은 크뤼거(Johann Crüger)의 멜로디에 의한 것인데, 로마서에서 발췌한 다섯 구절로 확장되어 있다. 바흐는 감탄할 만큼 숙달된 방법으로 코랄 작법을 다양하게 했다. 극적인 세번째 구절 “Trotz dem alten Drachen”은 워드 페인팅의 뛰어난 예이며, 고요한 정선율 변주인 “Gute Nacht, o Wesen”은 감정의 깊은 곳을 적시는 아름다움이 있다.

5성부 푸가 “Ihr aber seid nicht fleischlich, sondern geistlich”가 모테트의 심장부를 이루고 있다. 노이만(Werner Neumann)은 이것을 가리켜 “성악화된 오르간 푸가”라고 불렀다. 이것은 기악 푸가의 작곡 기술을 명확하게 상기시키는데 푸가 주제의 성격, 간주의 구조, 건반음악을 연상케 하는 리듬 등 모든 요소들이 오르간 푸가의 강한 영향을 보여준다. 모테트의 다른 푸가, BWV 225의 “Alles, was Odem hat”와 BWV 226의 2중 푸가 “Der aber die Herzen forschet” 또한 바흐의 기악 푸가와 유사점을 보인다. 그것들은 미사나 칸타타의 포함된 성악 푸가의 원리를 따르지 않았다.

4. 바흐 시대의 연주 관습

토마스 교회는 모테트 연주 전통을 유지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연주 관습 전통까지는 유지하지 못했다. 19세기 초반부터 성 토마스 교회의 합창단은 토요일 저녁 예배 때 모테트를 정기적으로 불렀는데 이때 합창단은 모테트를 소위 ‘a cappella’로 불렀다. “가장 성스러운 악구들은 어떤 다른 소리의 혼합 없이 인간의 숨결에서 나와야 한다”라는 호프만(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의 언급처럼 무반주로 모테트를 부르는 것은 낭만주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아 카펠라’ 개념은 로마의 팔레스트리나 양식에서 비롯한 것이고, 19세기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서 종교음악에 대한 미학적 관점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바흐 그 자신은 기악 반주를 붙여서 모테트를 연주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아 카펠라 즉 교회 풍으로라는 하는 용어가 곧 무반주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세 이래로 거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오르간과 종 연주가 허용되었으며 이베리아 반도의 가톨릭 교회는 다양한 기악을 성악 성부에 중복하여(colla parte) 찬란한 음향을 빚어냈다. 이처럼 아 카펠라 합창에는 최소한 오르간 반주가 붙었으며 순수한 무반주 합창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였다. 라이프치히의 모테트집 Florilegium Portense에는 오르간 반주가 있으며 오케스트라 반주를 덧붙일 수도 있다고 했다.

성 토마스 교회 규정에는 장례식에 악기를 쓰지 못하도록 했으나 금지된 악기에 오르간까지 포함되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또한 라이프치히 대학 부속 교회인 성 바울 교회에는 그와 같은 규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성 바울 교회에서 연주된 에르네스티 교장의 장례식을 위한 모테트 BWV 226은 바흐의 손에 의한 오케스트라 악보가 전해지고 있다. 제 1합창단에 제 1바이올린, 제 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그리고 제 2합창단에 제 1오보에, 제 2오보에, 오보에 다 카치아, 바순의 기악 편성이 성악을 중복하여 연주하고 완전하게 숫자 기보된 바소 콘티누오 파트가 있다.

BWV 228은 아마도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가 완성시킨 오케스트라 악보가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는 제 1합창과 제 2합창 모두 현으로 반주되며 제 1합창단의 베이스 파트에 완전하게 숫자 기보된 바소 콘티누오가 부가되어 있다.

BWV 230은 아마도 바흐 자신이 쓴 완전한 바소 콘티누오 파트가 전해지고 있고 다른 사본에는 “con strumenti”라는 지시가 되어있다. 기악 악보가 없기 때문에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기악 파트보가 사라진 것으로 추측했지만 빌헬름 에만(Wilhelm Ehmann)은 당대 연주관습을 고려하여 기악 주자들이 성악 파트보를 보고 연주했으리라 추정했다. 모차르트가 라이프치히에서 BWV 225를 들었을 때 토마스 합창단은 무반주로 불렀지만 그것은 연습이라는 특별한 상황이었고 나중에 모차르트는 악보에 “풀 오케스트라 반주가 필요하다”고 주석을 달아 놓았다.

제 1합창에 현악기, 제 2합창에 리드 관악기를 중복하여 연주하는 연주관습을 다른 모테트까지 일반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는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바흐가 전임 칸토르나 조상들의 미사와 모테트 작품, 심지어 팔레스트리나의 미사에 오케스트라 반주를 붙인 것이나 모테트 스타일의 칸타타 악장이나 코랄에서 항상 기악을 콜라 파르테로 연주한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바흐의 친척이자 당시 권위있는 음악사전의 편집자인 발터(Johann Gottfried Walther)는 Musicalische Lexicon(1732)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바소 콘티누오는 논외로 하고 기악 없이 연주 가능한 성악 작품이라도 성악 성부는 모든 종류의 악기로 대체되거나 보강될 수 있다.” Historie der Kirchen-Ceremonien in Sachsen은 작센 지방의 장례식 관습에 대해 죽은 사람이 특히 귀족이거나 중요한 인물인 경우 기악 반주를 붙였다라고 전하고 있다. 또한 함부르크의 뛰어난 음악 이론가이자 바흐의 친구인 요한 마테존(Johann Mattheson)은 Der vollkommene Capellmeister(1739)에서 최근 성악 연주에 바소 콘티누오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풍부한 기악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오르간은 모든 경우에 필수적이었다. 모테트가 연주되는 행사는 망자의 집에서 묘지까지의 매장식과 묘지에서 교회까지의 추도식을 아우른다. 오르간이 없는 장소에서 연주할 경우에, 예를 들어 공동묘지 예배소에서는 흔히 ‘장례식 레갈’이라고 부르는 작은 이동식 오르간이 사용되었다. 키른베르거는 교회 음악 연주에서 4성부, 8성부 혹은 그 이상에서 기악 반주 없이 연주하더라도 성악을 보강하고 음정을 유지하기 위해 오르간 연주는 항상 포함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5. 현대 모테트 연주의 문제

이러한 역사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음악학적으로 몇 개의 중요한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남아있다. 복합창을 위한 다른 모테트 역시 기악에 의해 성부를 중복해 연주했는가? 콘티누오 파트는 어떻게 다루어 졌는가? 각 합창단은 마태 수난곡의 복합창 악장처럼 고유한 바소 콘티누오 파트를 가지고 있었는가 아니면 두 베이스 성악 파트로부터 편집된 하나의 바소 콘티누오 만을 가지고 있었는가?

좀 더 근본적으로 기악 반주 자체에 대한 회의가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는 BWV 230만 바소 콘티누오를 붙여 연주하고 나머지 작품은 무반주로 불렀다. 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악보가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격성’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즉물주의’와 ‘역사적인 연주방식’을 종종 헛갈리곤 했다.

바흐 시대에 성악 성부에 기악 반주를 중복한 것은 순수하게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악을 중복하는 연주관습은 당시 모테트를 부르는 가수들의 수와 기량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오늘날 완벽하게 연마되고 충분한 수로 구성된 프로 합창단에도 기악 반주가 필요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되며 실제로 무반주 내지는 간소하게 오르간만으로 반주하는 해석을 시도하는 합창단도 생기고 있다.

그러나 실제 기악을 중복하여 뛰어나게 연주한 것을 들어보면 기악을 중복해서 연주하는 것이 부족한 성악을 보조하는 실용적인 이유가 우선이며 표현과 색채감을 다채롭게 하는 것이 보조적이라 할지라도 전체적인 표현에 큰 도움이 되며 그 표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굳이 선입견을 가지고 기악과 함께냐 혹은 무반주냐 한 가지 원칙을 독단적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곡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 연주자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또 다른 문제는 합창 편성의 문제이다. 19세기 토마스 칸토르이자 바흐 전집 편집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빌헬름 루스트(Wilhelm Rust)는 바흐의 일부 작품에서 성악 파트가 콘체르티노와 리피에노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60년 빌헬름 에만은 b단조 미사를 연주할 때 합창을 콘체르티스트와 리피에니스트로 정교하게 구분하여 연주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알프레트 뒤어(Alfred Dürr)는 즉각 여기에 대해 너무 복잡하다고 비판을 가했지만 에만과 로버트 쇼(Robert Shaw) 이후 미사와 칸타타 연주에서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원리는 점차 자주 시도되고 있다.

바흐는 규모있는 칸타타 작품에서 솔로와 합창을 모두 부르는 콘체르티스트와 합창을 보강하는 역할만 하는 리피에니스트를 구분했다. 이는 오늘날의 솔로와 합창 개념과는 좀 다르다. 간단한 모테트는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를 구분하지 않은 것 같지만 바흐의 모테트는 예배에 사용되는 모테트의 수준을 크게 뛰어넘고 있으며 따라서 기교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연주자 그룹인 콘체르티스트를 구분하여 불렀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까지 바흐 재발견에 큰 영향을 미친 영국 합창 전통은 바흐 연주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을 세워놓았다. 즉 칸타타, 모테트, 수난곡, 미사를 부르는 가수들의 수준은 동일하며 리피에니스트(합창)는 필수이고 콘체르티스트(솔로)는 선택적이다. 그리고 기악 앙상블이 크면 성악 앙상블도 덩달아 커져야 한다.

반면 역사적인 자료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콘체르티스트는 솔로와 합창을 모두 부르며 리피에니스트는 부분적으로만 참여한다. 그리고 리피에니스트는 있을 수도 있고 필요없는 경우도 있는데 콘체르티스트와 분리되어 불렀기 때문에 리피에니스트가 있는 경우에는 리피에니스트를 위한 파트보가 따로 있고 따라서 한 벌의 파트보만 전해지는 작품은 최소한의 콘체르티스트로 불렀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죠슈아 리프킨은 최소 편성 원리를 도출해냈다. 오늘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원리가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적용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최소 편성 연주는 끊임없는 논쟁거리를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찬반 양편에 나누어 서로에게 칼을 겨누기 전에 음악가들은 원전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성부당 서너명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합창 편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삼는 바흐의 Kurtzer, iedoch höchstnöthiger Entwurff einer wohlbestallten kirchen Music(1730) 일명 Entwurff는 사실 성악에서 콘체르티스트와 리피에니스트를 구분한다는 사실도 알려주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제외한 발췌한 번역문을 근거로 삼고 있다. 원문의 몇몇 단어는 매우 모호하게 해석될 수 있으며 Entwurff의 정확한 의미는 다른 역사적인 사실들을 함께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무반주로 연주할 것인가? 바소 콘티누오 혹은 오케스트라 반주를 붙일 것인가? 소년 합창을 사용할 것인가? 성인 남녀로 구성된 혼성 합창으로 부를 것인가? 일반적인 합창편성,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최소편성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운용은 모테트의 섹션별로 간단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가사와 다이나믹 지시를 고려하여 다양하게 변화를 줄 것인가? 리피에노를 성악으로만 할 것인가 아니면 최소 편성 콘체르티스트에 기악 리피에노로 보강할 것인가? 이를테면 Jesu, meine Freude에서 콘체르티스트만이 참여하는 고요한 부분은 어떻게 반주할 것인가? 바소 콘티누오가 쓰여있지 않은 모테트에서 베이스나 다른 최저음 성부에서 어떻게 바소 콘티누오를 재구성 할 것인가? 푸가는 콘체르티스트만 부를 것인가 리피에노를 보강하여 부를 것인가? 푸가 주제는 오르간이나 다른 기악으로 콜라 파르테 할 것인가? 등 바흐 모테트를 연주하려고 할 때 음악해석자, 지휘자, 연주자가 고민해야 할 연주관습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바흐 시대의 앙상블 편성과 밸런스를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가, 또 장례식을 위한 모테트를 연주회장에서 연달아 연주하는 것이 과연 합목적적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도 쉽게 내놓기 힘들다. 모테트는 여러모로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답이 없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할 수 있다라는 자세는 옳지 않다. 어떤 사상을 지향하며 고민하는 것은 그 과정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모든 종류의 연주 관습은 선입견을 버리고 한번쯤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최지영, antiquevangel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