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çois Couperin — Trois Leçons de ténèbres pour le Mercredi saint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보석

고전음악 애호가, 특히 바로크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 가운데 프랑수와 쿠프랭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와 함께 18세기 프랑스 클라브시니스트를 대표하는 대 쿠프랭은 ‘클라브생의 시인’이라는 낭만적인 별명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왕실 어전 음악가들(Ordinaire de la Chambre du Roy)이 연주한 왕궁의 합주곡집(Les Concerts Royaux)이나 이탈리아 트리오 소나타 양식을 받아들인 코렐리 찬가륄리 찬가 같은 기악곡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쿠프랭이 왕실 예배당(La Chapelle Royale)과 생-제르베(Saint-Gervais) 성당의 위대한 오르가니스트였으며 륄리 이후 주요한 종교음악 작곡가 가운데 한명이었다는 사실은 종종 잊어버린다. 쿠프랭은 특별히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였으며 그런 점은 표제 붙은 클라브생 음악에서 두드러지지만 종교 음악도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다. 세 개의 르송 드 테네브르는 바로 그와 같은 개인적이며 섬세한 취향을 지닌 드문 종교음악의 걸작이며 최근에 이르기까지 망각의 강 건너편에 버려져 있었던 프랑스 바로크 종교음악 가운데 마치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보석 같았던 작품이다.

1. 테네브레와 예레미야의 애가

쿠프랭의 르송 드 테네브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이 되는 ‘테네브레 의식’과 ‘예레미야의 애가(哀歌)‘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테네브레란 이름은 ‘어두운’이라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성 목요일부터 성 토요일까지 성 주간의 삼일(Sacrum Triduum)을 위한 조과(Matutinum)와 찬과(Laudes)의 끝 부분에 촛불을 끄는 의식을 가리킨다.

각 테네브레는 저녁기도 시편, 안티폰, 성서일과 등으로 구성되는데 르송은 바로 이 성서일과를 일컫는 말이다. 산 모양의 촛대에 13개나 15개의 양초를 켜놓고 성가가 끝날 때마다 초를 하나씩 꺼가며 마침내 완전한 어둠 속에서 의식을 마치게 된다.

테네브레는 중세 이후 1955년까지는 편의상 전날 밤으로 앞당겨서 행했기 때문에 어두운 조과(matutinum tenebrarum) 등으로 불리었다. 그래서 쿠프랭의 작품이 원래는 성 목요일을 위한 르송 묶음이지만 ‘Mercredi’(수요일)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다. 1956년 성주간전례(聖週間典禮)의 개정으로 다시 당일 새벽으로 되돌려 졌기 때문에 명칭에 혼란이 생겼다.

르송 드 테네브르는 루이 14세 당대의 종교음악 중 가장 고상한 위치를 차지하는 음악이었다. 이와 같은 장르는 18세기 전반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미셀 랑베르(Michel Lambert), 마르캉트완 샤르팡티에(Marc-Antoine Charpentier) 등 프랑스 바로크를 대표하는 종교음악의 거장들은 모두 르송 드 테네브르를 작곡했고 쿠프랭도 예외가 아니었다.

르송 드 테네브르의 텍스트가 되는 것은 구약성경 중 예레미야의 애가라고 하는 부분이다. 본래 히브리 애가 자체에는 기록자의 이름이 없었지만 유대의 전통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록이라고 전하고 있다.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내용과 사상이 애가와 일치하며 망해가는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비탄과 눈물 중에 회개를 촉구하는 주제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틴어역 성경에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애가”라고 하는 첫 부분을 덧붙였다.

예레미야의 애가는 기원전 586–585년경 유대 민족이 망하여 이집트로 끌려간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종래에는 이 시기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쓴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성경의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작가들이 쓴 것으로 보인다.

애가라고 하는 명칭은 라틴어 ‘Lamentatio’에서 왔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시작하는 단어에서 따온 ‘에카’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70인역에서는 ‘뜨레니’(θρηνοι)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비탄(悲嘆), 애도(哀悼)‘라는 뜻이다. 이것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의 애가”라고 하였으며 나중에 번역된 성경들은 모두 이것을 따랐다.

애가는 말 그대로 슬픈 노래이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사실을 두고 읊은 5개의 우울하고 슬픈 시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멸망을 한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강력히 호소하고 있다. 애가의 텍스트는 힘차고 깊이 있기 때문에 시적으로도 훌륭하다. 예레미야의 애가를 음악으로 들으려는 사람은 그 텍스트를 읽고, 깊이 묵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예레미야의 애가는 히브리 글자 순서대로 한 절씩 쓴 독특한 시이다. 히브리 알파벳은 모두 22자이기 때문에 1장, 2장, 4장은 한 자모에 한 절씩 22절짜리 시로 되어 있다. 그리고 3장은 한 자모에 3절씩 시를 써서 모두 66절이 되었고 5장은 이 자모 순서를 따라 쓰지 않았으나 절수는 모두 22절이다.

각 절의 앞부분에서 히브리어 알파벳 22자가 순서대로 알레프(א), 베트(ב), 기멜(ג), … 로 진행된다. 이런 형태는 옛 서사시는 물론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 특정 글자들을 맨 먼저 나오도록 시를 쓰는 것을 답관체(踏冠體) 혹은 이합체(離合體, Acrostic)라고 한다.

이를테면 “가-을도 지나고 / 나-의 쉴 곳은 어디에 / 다-음 여행지는 / 라-일락 꽃 피는 / ……”이 이합체의 예이며 이런 식으로 가-나-다-라-… 두운이 연결되는 구조이다. 고도의 운율을 지닌 히브리 원문을 라틴어 성서로 번역하면서 이와 같은 운율 구조가 파괴되었다. 그래서 그 히브리어 원문의 운율을 맞추는 방법으로 히브리 알파벳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라틴어로 내용을 기록하였다. 나중에 라틴어 성서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그 구조가 깨지고 히브리 알파벳을 앞에 쓰는 구조도 생략되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옛 형태를 찾아 볼 수 없다.

잘 알려진 것처럼 폴리포니 시대에 예레미야의 애가를 가사로 한 걸작들이 수 없이 작곡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모노디가 탄생한 이후 예레미야의 애가는 곧 새로운 기법으로도 작곡되게 되었는데 유명한 과학자 갈릴레이의 아버지이자 피렌체 카메라타의 일원이었던 빈첸초 갈릴레이(Vincenzo Galilei)가 신 양식으로 예레미야의 애가를 처음 작곡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아쉽게도 작품은 전해지지 않는다.

2. 세 개의 르송 드 테네브르

생-샤펠 오르가니스트로서 쿠프랭은 왕실 예배를 위해 단성 혹은 이중창을 위한 쁘띠 모테트(Petit motets)를 주로 작곡했다. 그러나 이전에 작곡한 모든 모테트을 능가하는 걸작인 성 수요일(목요일)을 위한 세 개의 르송 드 테네브르는 왕실이 아닌 롱샹(Longchamp) 수도원의 수녀들을 위해 작곡했다. 이는 샤르팡티에가 르송 드 테네브르를 뽀르-루와얄(Port-Royal) 수도원을 위해 작곡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왕실 예배당 음악의 주축은 샤펠 르와얄의 지휘자 륄리(Jean-Baptiste Lully)와 부지휘자 미셀 리샤르 드 랄랑드(Michel-Richard de Lalande)가 확립한 그랑 모테트(Grand motets)였다. 사실상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체제가 탄생시킨 그랑 모테트야말로 부르봉 왕조의 바로크적 거대주의를 대표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루이 14세 치세하에 륄리와 드 랄랑드는 음악의 전권을 쥐고 극음악은 물론 종교음악에서도 다른 작곡가들의 활동을 방해했는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뛰어난 음악가들에 의해 지방 수도원의 음악활동이 활성화되는 개기가 되었고 베르니에(Nicolas Bernier), 캉프라(André Campra), 쿠프랭 등은 작곡가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쁘띠 모테트 장르를 발전시켰다.

당시 파리 근교의 롱샹 수도원은 특히 높은 연주 수준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 롱샹 수녀들이 테네브레 의식을 위해 쿠프랭에게 작품을 의뢰하였고 이에 화답한 것이 쿠프랭 자신의 마지막 종교음악이자 궁극의 종교음악이 되었다. 작곡은 1713년경 완료된 것 같고 1714년 악보가 출판될 때 까지 소소한 개정이 이뤄졌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르송은 독창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해, 세 번째 르송은 이중창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작품이다. 쿠프랭은 아마도 소프라노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겠지만 당시 흔히 그렇듯 작품 판촉을 위해 다른 성부로도 부를 수 있다고 지시해 놓았다.

쿠프랭 자신이 쓴 악보의 서문은 작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서문에 따르면 쿠프랭은 샤르팡티에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성주간의 삼일을 위해 세 곡씩 세 묶음의 르송 드 테네브르를 모두 작곡하였으나 실제로는 그중 먼저 출판된 첫 번째 세곡만이 오늘날 전해지며 출판 예정이었던 나머지 여섯 곡의 르송은 실제로 출판되지 못하고 자필 악보도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 전해지는 르송 드 테네브르의 아름다움에 비춰 볼 때 나머지 작품이 흩어져버린 것이 음악사상 얼마나 큰 손실인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세 개의 르송 드 테네브르는 예레미야의 애가의 1장 1절 알레프(א)부터 14절 눈(נ)까지를 가사로 하고 있다. 첫 번째 르송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애가”로 시작하며 각 르송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희 주 하나님께 돌아오라”라는 후렴구로 끝나게 된다.

곡의 구조는 원문의 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 알파벳과 라틴어 내용이라는 이합체의 특징을 지닌 라틴어 예레미야의 애가를 기반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음악의 구조도 독특하다. 각 절의 앞에 있는 히브리 알파벳은 보칼리제로 길고 기교적으로 부르며 이어지는 라틴어 텍스트는 낭창 형식으로 부른다.

히브리 알파벳을 보칼리제로 부르는 것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멜리스마 스타일에 이탈리아의 기교들을 가미한 것이다. 그리고 낭창 부분은 프랑스 궁정가곡(Air de cour) 전통에 따른 프랑스 취향이 엿보인다. 쿠프랭은 성악곡에서도 이탈리아의 기교와 프랑스의 서정성과 우아함을 연결시켰으며 그 모든 음악적인 기법은 궁극적으로 텍스트의 표현에 기여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기교에 결합된 뽀르 드 브와(ports de voix), 팽세(pincé), 트랑블망(tremblement) 같은 프랑스 장식음을 통해 히브리 알파벳 보칼리제는 특별한 의미로 다시 태어난다. 종종 보칼리제는 다음절의 의미를 미리 보여주는 듯하다. 이를테면 ו(바우)에서 비올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 성부로 나타나는데 비올이 처음에는 성악 파트와 모방적으로 움직이다가 병행으로 진행되더니 마침내 흩어져서 바소 콘티누오 뒤로 사라지게 된다. 이는 마치 다음 절에서 “도성 시온의 누리던 모든 영광이 사라지고”를 암시하는 듯하다. 또한 보칼리제는 종종 다음절과 강한 조성 대비를 통해 청중들이 텍스트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쿠프랭의 르송에서는 텍스트의 힘과 음악의 힘이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선율은 감정을 뒤흔든다. 단어의 리듬과 인토네이션은 그대로 음악의 리듬과 인토네이션으로 이어지며 단어의 의미는 프레이즈의 상승과 하강으로 교묘하게 표현된다.

뽀르 드 브와 같은 장식음이 엮어내는 불협화음과 그 해결 과정은 마음을 뒤흔드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쿠프랭의 장식음은 표현에 있어서 중요한 기법이다. 쿠프랭은 모든 장식음을 꼼꼼하게 적어놓았고 이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은 프랑스 바로크 음악 연주에서 필수적이다. 쿠프랭의 르송은 너무나 정교한 장르라서 이탈리아식의 즉흥연주는 허용되지 않는다. 쿠프랭의 장식음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라 인간 감정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필요불가결한 존재이다. 찰스 버니(Charles Burney)는 프랑스의 장식음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고 불평했지만 쿠프랭에 한정한다면 버니는 분명히 틀린 것이다.

쿠프랭은 작품의 여기저기에 정지 지시를 하고 있다. 이는 촛불을 끄는 시간을 나타낸 것이다. 각 절이 진행될수록 촛불은 하나둘 꺼져 마침내 완전한 어두움과 고요 속에서 끝맺는다. 오늘날에는 이런 의식을 볼 기회가 없지만 어떤 인공적인 불빛과 외부 소음이 없는 고요한 공간에서 르송 드 테네브르의 마지막 음이 은은한 잔향으로 울려퍼지는 것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대 쿠프랭은 륄리나 드 랄랑드와 달리 클라브생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언제나 작고 친밀한 작품을 선호했다. 샤펠 르와얄의 그랑 모테트는 마치 푸시니스트의 그림처럼 객관화된 미, 다시 말해 베르사이유의 이상을 충족시킬 수 있는 거대한 그 무엇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쿠프랭은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자의 슬픔을 매우 주관적인 방식으로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일찍이 장-프랑수와 파이야르는 “종교 감정의 깊이와 함께 음악적 어법의 자유로움에 의해 종교음악의 궁극에 이른 것”이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쿠프랭의 자유롭고 친밀한 작풍은 마음에 쉽게 와 닿으면서도 텍스트의 무게감과 맞물려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데 놀랄 수밖에 없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멀리 존재하는 인물이 아닌 바로 앞에서 마음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쿠프랭의 르송 드 테네브르에 끊임없이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3. 연주관습

쿠프랭의 서문은 연주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또한 논쟁거리도 똑같이 던져놓았다. 쿠프랭에 따르면 르송 드 테네브르는 소프라노를 위한 작품이지만 다른 성부를 위해 조옮김해 부를 수도 있다. 쿠프랭이 의도한 것은 정황상 분명히 소프라노이며 다른 성부를 언급한 것은 상업적인 목적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소프라노-소프라노 구성 이외에 카운터테너-카운터테너 혹은 소프라노-알토, 카운터테너-테너, 테너-테너의 다양한 구성이 시도되고 있고 드물게 베이스의 연주도 있다. 만약 가능하다면 영국식 카운터테너가 아닌 프랑스식 오뜨-꽁뜨르(Haute-contre)로도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소프라노가 부른다고 하여도 어떤 스타일로 불러야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서문에도 언급하고 있듯 르송 드 테네브르는 본래는 수녀들이 부를 목적으로 작곡되었다. 하지만 수도원에서의 종교음악 연주가 인기를 얻게 되자 사순절 기간 동안 오페라 시즌이 휴업일 때 오페라 가수들이 파리 근교의 수도원에서 활동하는 일이 흔해졌다. 우리는 쿠프랭이 잘 알고 있었을, 그리고 염두에 두고 있었을 뛰어난 가수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데 조카 마르게리트-루이제(Marguerite-Louise Couperin)는 뛰어난 소프라노 가수로서 궁정에서 활약했으며 딸 마리-마들레느(Marie-Madeleine Couperin)는 모뷔송 수도원(Abbaye de Maubuisson)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오페라 가수들이 르송 드 테네브르를 불렀다라고 가정한다면 표현의 정도는 분명 달라진다. 오늘날 옛 음악에 뛰어난 가수들은 대부분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 레퍼토리에서 충분한 경력을 쌓았으며 프랑스식 장식음이나 비브라토를 정교하게 구사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정교한 가창법과 조밀한 비브라토나 감칠맛 나는 뽀르 드 브와가 표현하는 풍부한 색채가 르송 드 테네브르 연주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억해둬야 할 것은 텍스트의 순수한 힘을 전달하는 것이 가수의 임무이며 가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기교를 남발하는 것은 피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바소 콘티누오 악기에 대한 쿠프랭의 지시는 비교적 명확하다. 오늘날 연주들을 살펴보면 비올라 다 감바와 오르간이라는 조합이 표준화되어버린 것 같지만 실제 쿠프랭의 지시는 현악기는 비올라 다 감바(Basse de Viole) 혹은 첼로(Basse de Violon)이며 건반악기는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19세기 독일 학자들 덕분에 세속음악은 하프시코드, 종교음악은 오르간이라는 이상한 이분법이 생겼지만 18세기에 포지티브 오르간이 실내악 연주에 자주 사용되었던 것처럼 하프시코드도 종교음악에 참여했다. 또한 오르간과 하프시코드의 더블 콘티누오가 사용되기도 하고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결합악기인 클라비오르가눔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쓰였던 것 같다.

오르간의 경우 두 개 이상의 손 건반에 페달 보드가 있는 큰 오르간으로 연주할 것인가 혹은 작은 포지티브 오르간으로 연주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가 생긴다. 대 오르간은 다양한 레지스트레이션 조합을 통해 텍스트의 표현을 직접적으로 보조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대신 음향과 공간의 크기 때문에 성악이나 비올라 다 감바와 친밀한 앙상블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를테면 두 번째 르송의 바우에서 비올라 다 감바가 날아오르는 듯 한 느낌을 줘야 하는데 대 오르간을 사용한 연주에서는 그 음향에 비올이 묻히게 된다.

최근 중요한 연주 경향은 테오르보 등 발현악기를 바소 콘티누오 악기로 사용하는 것이다. 17세기의 미하엘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 등이 언급한 건반악기와 발현악기를 조합하는 연주관습이 18세기에도 유지되었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테오르보는 쿠프랭이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당시까지 중요한 실내악 악기로 애용되고 있었는데 특히 하프시코드에 비해 자유로운 표현이 높이 평가받았다.

라틴어 발음은 요 몇 년간 르송 드 테네브르는 물론 프랑스 바로크 종교음악을 연주하는데 가장 주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이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라틴어 문법과 발음은 불가타 라틴어이다. 그 외에 문예부흥기에 고전 라틴어로 회귀하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에라스무스 라틴어 발음이 있다.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18세기 프랑스의 라틴어 발음은 현대의 라틴어 발음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었을 것이다.

역사적인 연주방식을 재발견하게 된 다음에도 오랫동안 특정지역의 라틴어 발음 따위를 연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장 튀베리(Jean Tubéry), 에르베 니케(Hervé Niquet) 같은 지휘자들의 노력으로 18세기 프랑스식 라틴어 발음이 부활하면서 지역별 라틴어 발음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었다. 18세기 파리 지역의 라틴어 발음법과 리듬과 인토네이션은 프랑스 어의 영향이 현저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현대 불가타 라틴어와 상당히 달랐던 것 같다. 그리고 쿠프랭의 음악어법은 단어의 리듬 및 인토네이션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발음법의 차이는 곡의 분위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게다가 튀베리가 지적하는 것처럼 프랑스식 라틴어의 독특한 발음은 일종의 장식음으로도 작용한다.

90년대 이후 최근의 르송 드 테네브르 연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프랑스식 발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연주마다 몇 가지 특징적인 자음(이를테면 J와 모음 사이의 S)과 모음(I와 U 및 복모음들)의 발음을 주의 깊게 비교하며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4. 연주사

지금은 거의 잊혀진 이름이지만 스위스 테너 휴그 퀴에노는 르송 드 테네브르 재발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퀴에노는 오페라와 프랑스 근대가곡 가수로 주로 활동했지만 또한 나디아 불랑제와 함께 마쇼나 몬테베르디 같은 초기 음악 부흥운동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1936년 퀴에노는 세 번째 르송을 합창과 함께 불렀으며 1950년에는 첫 번째 르송을 하프시코드와 비올라 다 감바 반주로 노래했다. 그리고 드디어 1953년에는 웨스트민스터 레이블에서 전곡 녹음했는데 세 번째 르송은 테너와 함께 불렀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테너가 부른 유일한 음반이다. 장식음의 처리나 바소 콘티누오의 연주는 반세기 전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나 상당한 정도의 정교함으로 연주되었다. 이 기념비적인 연주들은 몇 가지 CD로 재발매 되었으나 모두 입수하기 곤란한 것이 아쉽다.

르송 드 테네브르 초기 연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주는 로랑스 불라이가 지휘한 1954년 에라토 녹음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르송은 소프라노가, 세 번째 르송은 소프라노와 알토가 참여하여 모두 여성이 부른 첫 번째 연주로서 프랑스식 장식음의 처리 측면에서 종래의 연주수준을 한차원 높이 끌어올린 기념비적인 연주이다. 세 번째 르송에서 바이올린이 반주에 참여하는데 무반주 폴리포니나 모노디에 기악 반주를 덧칠하는 것이 일시적으로 유행했던 시대의 아련한 잔재이다. 로랑스 불라이는 쿠프랭의 르송을 깊이 있게 파고든 위대한 선구자이며 약 30년 후 다시 한 번 놀라운 연주를 들려주게 된다.

카운터테너 알프레드 델러의 두 녹음은 아마도 르송 드 테네브르 초기 연주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연주일 것이다. 첫 번째 녹음(Vanguard, 1960년)에서 델러는 초기 카운터테너 예술의 정수를 들려준다. 델러의 목소리는 가식이 없으며 순수한 호소로 가득한데 장식음이 정교하지 못하다던가 하는 단점들은 들을수록 빠져드는 매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713년 자필악보와 출판악보에 기초한 델러 자신의 에디션으로 연주했다.

두 번째 녹음(HMF, 1967년)에서는 이전 녹음보다는 목소리의 신선함이 덜하지만 장식법은 더 정교해졌고 텍스트의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확신은 전작을 능가한다. 무엇보다도 음색을 파괴하면서까지 들려주는 열정적인 표현은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깊이지면 깊어질수록 마음 깊이 와 닿는다. 뱅가드와 아르모니아 문디 프랑스의 녹음 모두 세 번째 르송은 카운터테너와 테너 이중창으로 불렀는데 강한 대조를 이루는 앙상블이 너무 거칠고 조야하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는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쿠프랭을 불렀다는 사실에 아마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이다. 피셔-디스카우는 1963년 전설적인 여류 하프시코드 주자 에디트 피히트-악센펠트의 반주로 첫 번째 르송을 불렀다(EMI). 현재까지는 유일한 베이스-바리톤의 노래인데 낮은음 가수가 르송을 불렀다는 사실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프랑스 바로크 레퍼토리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무모한 시도는 첫 번째 프레이즈 “선지자 예레미야의 애가”부터 산산조각나기 시작한다.

엠마 커크비와 쥬디트 넬슨, 그리고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연주(Loiseaulyre, 1977년)는 전설 그 자체이며 이미 옛 음악 연주의 고전이 되어있다. 쿠프랭의 의도대로 소프라노가 불렀으며 음고, 악기, 연주기법, 장식법 등의 측면에서 역사적인 연주방식이 완전하게 적용된 첫 번째 연주이다. 뼛속까지 옛 가창법을 익힌 쥬디트 넬슨과 엠마 커크비라는 희대의 바로크 가수들이 들려주는 비브라토 없는 청명한 소리와 대립감이 없는 훌륭한 음색적 융화와 밸런스는 르송 드 테네브르의 신비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 가볍게 떠오른 높은 음이 한 점 티 없이 울려 퍼질 때 주체할 수 없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콰이큰, 융해넬, 크리스티 등 위대한 고음악 연주자들과 함께 한 젊은 르네 야콥스의 1983년 녹음(HMF)는 넬슨-커크비와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르송에 접근했다. 커크비-넬슨이 맑은 음색과 조화로운 앙상블을 추구한다면 야콥스는 음역에 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목소리 색깔과 리듬감과 강세가 풍부한 발음으로 텍스트의 강한 표현을 추구한다. 바소 콘티누오의 표현력도 한 차원 드높였는데 테오르보를 사용하여 원하는 곳에 마음껏 액센트를 줄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르송에서 테오르보와 비올 조합이 들려주는 깊이 있는 표현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1988년 로랑스 불라이는 두 번째로 르송을 녹음했다. 르와주리르에서 출판된 불라이 자신의 에디션으로 연주했으며 이번에는 30년전과 달리 그녀 스스로 하프시코드와 오르간 바소 콘티누오를 연주했다.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에서 경력을 쌓은 가수들을 기용하여 처음으로 극적인 르송을 들려준 기념비적인 연주이다. 넬슨-커크비가 수도원의 신비로움을 이미지화했다면 반 데어 슬롸이스-로랑은 드라마틱한 가창과 과감한 장식음 처리로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프랑스식 라틴어 발음을 본격적으로 사용하진 않았지만 프랑스어 인토네이션의 독특한 강세를 통해 낭송에서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다. 보칼리제는 비올과 오르간, 낭송에는 테오르보와 하프시코드를 쓰는 등 바소 콘티누오 조합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 많다.

제임스 바우만과 마이클 챈스의 연주(Hyperion, 1990년)는 야콥스-다라와 마찬가지로 카운터테너의 노래지만 무척 다른 느낌을 준다. 바우만-챈스의 가창은 음색적 친화력이 뛰어나고 매우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바우만의 장식법에는 약점이 많고 트릴은 불안정하지만 목소리의 호소력이 각별하고 텍스트를 읽어내는 방법도 유창하다. 하지만 곧바로 등장한 렌-뒤가르댕의 연주 때문에 빛을 잃어 버렸다.

제라르 렌과 스티브 뒤가르댕의 연주(Harmonic, 1991년)는 카운터테너만으로 부른 연주 가운데 최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르송의 연주뿐만 아니라 음반의 절묘한 구성과 아름다운 패키지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것이 없다. 쿠프랭의 르송 드 테네브르에 저녁기도 시편과 레스폰소리움을 첨가하여 18세기 테네브레 의식처럼 음반을 꾸민 최초의 연주로서 음반의 제목도 ‘Office de ténèbres’라고 붙였다. 쿠프랭이 정성스럽게 쓴 전조의 힘을 강조하고 중요한 단어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내면서도 유창함과 우아함을 결코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시 제라르 렌이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건반악기 연주자 안느 샤플랭-뒤바가 이끈 앙상블 리라의 연주(Koch, 1992년)는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에서 훈련받은 가수를 사용하고 프랑스식 라틴어 발음을 채용하는 등 참신한 시도가 돋보였다. 르송의 연주관습을 정리한 내지의 내용도 충실하다. 그러나 가수들이 거칠고 텍스트 전달도 분명하지 않아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르송은 오페라 가수가 부른다고 할지라도 우아함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샤플랭-뒤바의 시도는 윌리엄 크리스티와 크리스토프 루세의 연주에서 완성된다. 프랑스 바로크 성악의 유망주 소피 다네망과 파트리샤 쁘띠봉이 부르고 윌리엄 크리스티가 하프시코드 반주한 에라토 연주(1996년)는 1977년의 커크비와 넬슨처럼 새 시대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스티는 살롱풍의 친밀한 연주를 통해 개인적인 신앙 측면에서 쿠프랭의 의도를 읽어내고 있다. 극단적인 프랑스식 라틴어 발음과 인토네이션이 이끌어내는 독특한 긴장감과 은을 뿌리는 듯 아름다운 하프시코드 반주는 쿠프랭다운 연주, 프랑스다운 연주가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에 멋지게 답을 하고 있다. 정교한 유리 세공을 보는 듯 구석구석 빛나는 연주로서 정교한 프랑스식 가창법의 교묘한 표현은 두 가수가 어우러지는 세 번째 르송에서 더욱 빛난다.

한편 소프라노 베로니끄 장과 상드린 피오 그리고 크리스토프 루세(Decca, 1997년)는 다네망-쁘띠봉-크리스티와 정 반대에서 쿠프랭을 바라본다. 생-앙트완 수도원의 쉐러 오르간(1748년작)을 사용한 이 연주는 음향과 표현 측면에서 르송 드 테네브르를 좀 더 거대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실제 수도원에서 불리는 르송의 이미지에 가장 근접한 연주일 것이다. 후렴인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에서 오르간의 여러 음색을 활용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뛰어난 오르가니스트인 올리비에 베르네가 생-레미 성당의 파리조 오르간(1739년작)으로 반주한 음반(Ligia Digitale, 1999년)은 프랑스 레퍼토리에 정통한 여성가수와 비올라 다 감바와 역사적인 대 오르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크리스토프 루세의 연주와 아주 유사하다. 흥미로운 점은 루세를 비롯한 최근의 연주들이 보통 쿠프랭의 쁘띠 모테트를 함께 수록하고 있는데 비해 올리비에 베르네의 연주는 비올 모음곡이 삽입되어 전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프라노 시릴 게르스탕아버와 스테파니 레비다 그리고 오르가니스트 엘리자베트 가이거의 음반(K617, 2001년)은 루세, 베르네의 연주와 마찬가지로 페달이 있는 큰 오르간으로 연주한 것이다. 요한-안드레아스 질버만이 1740년 제작한 생-퀴랭 성당의 명기가 사용되었다. 예레미야의 애가 첫머리부터 오르간의 강력한 음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연주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비올 대신 첼로가 바소 콘티누오를 연주하는데 오르간의 음색에 맞춰 첼로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이 음반은 렌의 연주처럼 르송에 저녁기도 성가와 레스폰소리움이 포함되어 있는데 특징이라면 레스폰소리움으로 라틴어 성가 대신 예루살렘에 대한 히브리와 아랍의 성가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동서양의 정서와 문화를 공유하는 것은 최근 프랑스 고음악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종종 시도되고 있는 일이다.

17, 18세기 음악 연주에서 가장 촉망받는 소프라노 중 한 사람인 요하네트 촘머도 최근 쿠프랭의 르송 드 테네브르를 연주했다(Channel Classics, 2003년). 현재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테오르보의 마이크 펜트로스와 오르간의 메노 반 델프트 등이 반주했는데 앙상블의 리더이기도 한 펜트로스의 테오르보가 크게 활약하고 있다. 촘머는 17세기 이탈리아 레퍼토리에는 뛰어났으나 프랑스의 장식음과 인토네이션에는 약간 이질감이 느껴진다. 표현은 풍부한 편이지만 정작 강조해야 할 부분에서는 오히려 약해지는 것 같다. 실제 연주회에서는 테네브레 의식을 재현하여 호평 받았으나 음반으로는 그런 분위기에 도달할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전성기에 도달한 로빈 블레이즈와 다니엘 테일러, 촉망받는 두 카운터테너의 새 연주(BIS, 2003년)는 마치 오래전 바우만-챈스를 연상시킨다. 라틴어 발음도 최신 경향을 수용하지 않았고 표현법에도 새로운 것이 없다. 이를테면 보칼리제에서 완화된 장식음의 표현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주가 종종 마음 깊은 곳에 도달하는 이유는 화려 장대와 대립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침착함과 완전한 조화를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지영, antiquevangelist.com